육아

서서 안아줘

아이를 자주 안아주는 우리 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계속 안아주면 손타서 힘들다며 장모님은 걱정하셨다. 하지만 우리는 아이를 안아줄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음을 알기에 30개월이 된 지금도 아이를 자주 안아준다.

아이는 마음이 불안할 때 “서서 안아줘”라고 말한다. 이제는 13kg 정도 무게가 나가다보니 특히 아내에겐 더 힘이 들어서 안기고 싶은 아이의 욕구를 다른 데로 돌려보려고 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안아주게 된다.

울면서 보채는 아이를 대할 땐 늘 아이의 마음속에 들어가보려고 노력한다. 불안, 슬픔, 걱정이 불현듯 다가올 때마다, 세상은 따뜻한 곳이어서 안심하고 살아가도 된 다는 것을, 서서 안아주며 체온을 나눔으로써 알려주려 한다.

평일 아침 풍경

요즘 아이는 아내와 같이 거실에 이불을 깔고 잔다. 아내가 출근을 준비하러 이불을 떠나면 내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아침에 일어난 아이가 혼자라고 느끼는 일이 없도록.

아이 옆에 누워서 잠든 아이를 바라본다. 그 순간의 평온함이 나는 좋다. 매일 아침 누리는 이 호사가 계속되었으면 좋겠지만, 이제 복직까지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찬 바람이 부는 겨울이 되면 아이는 평일 아침에 아빠를 볼 수 없다. 퇴근 후 아이를 더 빨리 만나기 위해 해가 뜨기 전에 집을 나서야 한다. 슬프지만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

그래도 육아휴직 덕분에 1년 동안은 편안한 몸과 마음으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다.

육아휴직 시즌 3

6월 첫째 주에 월화수목금 등원에 성공하면서 육아휴직 시즌 3로 접어들었지만, 그 뒤로도 여러가지 원인으로 어린이집을 꾸준히 보내지 못했다.

무엇보다 코로나의 영향이 상당이 컸다. 아이 엄마의 회사 동료가 문제가 되거나, 어린이집 선생님이 문제가 되거나, 전국적으로 상황이 심각해지거나 …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떡을 먹다가 잘 안 씹고 삼켜서 선생님한테 주의를 받은 일이 있었고, 그 후로 어린이집에서 밥을 안 먹기 시작했다. 선생님으로부터 아이가 놀지도 않고 구석에서 친구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한다고 들었다.

아침마다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하며 우는 아이를 더이상 그대로 볼 수 없어서 한동안 집에서 돌보면서 대안을 생각했다. 다른 어린이집에 보내면 괜찮을까, 놀이학교를 보내볼까 고민하다가, 문득 아이가 처음으로 마주한 세상과 이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사실이 슬프게 다가왔다.

다행히도 여름휴가를 포함한 긴 방학 끝에 다시 어린이집에 갔을 때 아이는 조금씩 다시 적응해 가기 시작했고, 가을이 된 지금은 즐거운 마음으로 어린이집에 다녀온다.

어린이집 적응에 어려움을 겪거나 코로나 때문에 갑자기 장기간 가정돌봄을 해야하는 시간이 올 때마다 올해 육아휴직 중이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문제는 나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간 시간에 나의 시간을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자유시간이 불규칙하여 계획을 세워 규칙적으로 무언가 해나가기 어려운 상황이었음을 차치하고서라도, 그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자유인으로서 순도 100%의 자유의지로 목표를 향해 달려갈만한 루틴과 의지력이 나에게 없다는 사실을 아프게 인정하고 있다.

코로나가 더 나빠지지만 않는다면 아마도 꾸준히 자유시간이 주어질 것 같다. 복직까지 3개월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는데, 스스로의 의지로 무언가를 성취하는 기적(?)을 만들어보고 싶다.

‘평생을 책임감이나 타인의 기대를 원동력으로 삼아 살아왔구나’하는 것이 1년 동안 회사를 쉬면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안녕 낸니

아이는 말문이 트일 무렵 신기하게도 스스로를 ‘낸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원래 이름은 ‘서은’인데 ‘ㅅ’을 발음하기 어려워서 스스로 만든 이름인지 어디서 온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낸니’라는 별명이 귀엽기도 하고 입에 착 붙어서 가족들도 진짜 이름 대신 ‘낸니’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최근엔 자신을 ‘낸니’가 아닌 ‘서은’으로 불러달라고 한다.

아이의 엄마도 나도 아이를 ‘낸니’라고 부를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서 조금은 서글픈 기분을 느끼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은 영원히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늘 인식하며 살아가야 하는데 쉽지 않다. 특히 아이와 함께한 순간들은 더욱 더 소중히 가슴속에 간직하고 싶다.

육아휴직 시즌 2.5

나의 육아휴직은 3개의 시즌으로 기획되었다.


시즌 1은 아내와 나의 육아휴직이 겹치는 약 2달의 기간으로, 오전에는 내가 오후에는 아내가 집 앞 도서관에서 책 읽고 공부하는 호사를 누렸다. (남들 일할 때) 셋이서 광교호수공원 산책을 다녀오는 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회사일 걱정 없는 세상은 아름다웠다.

아내의 복직을 보름 앞두고 주방을 접수했다. 식단을 짜고 장을 보고 세끼 식사를 차리는 일이 온전히 나의 몫으로 넘어온 것이다. 아내가 아이를 봐줄 때 미리 시행착오를 겪은 덕분에, 아이와 둘이 있을 때도 그럭저럭 해낼 수 있었다.


아내의 복직으로 시즌 2가 시작되었다. 어린이집에 가기전까지 2주, 어린이집 적응기간 3주 이렇게 총 5주로 계획되었던 시즌 2는 코로나19의 습격으로 무한정 길어졌고, 지금도 시즌 2가 끝났다고 봐도 될지 애매한 상황이다. 우여곡절 끝에 어린이집 적응에 성공했지만, 지난 주말 어린이집 선생님 한 분이 자가격리를 시작했다고 하니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이와 하루 종일 함께 하는 시즌 2가 길어진 덕분에 아이와 애착이 많이 형성되었다. 이 세상 모든 아빠가 딱 한 달만 아이와 둘이서 하루 종일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경험을 하면 좋지 않을까? 아이와의 애착은 아이가 어릴 때가 아니면 얻기 어려운 값진 선물이다.

힘들기도 했지만 미리 각오를 단단히 해서인지 걱정했던 수준만큼은 아니었다. 육아와 가사 자체가 힘들다기보다는, 내 시간이 아이에게 100% 점유되어 있다보니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학창시절 시험기간에 꼭 안 하던 게임이 하고 싶은 것과 비슷하게, 평소에 잘 안 하던 공부가 그렇게 하고 싶었다. 세상은 바쁘게 돌아가는데 나는 멈춰 있으니 뭐라도 해야할 것 같은 조급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밥을 차리고 설거지할 때마다 아이가 사정 봐주지 않고 놀아 달라고 보채서 식기세척기를 구입했는데, 천군 마마를 얻은 것 같았다. 아이를 키우거나 맞벌이 하는 집이라면 무조건 구입을 추천하고 싶다.


아직까진 한 번도 월화수목금 어린이집 등원에 성공한 적이 없지만, 그 날이 온다면 시즌 3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어린이집 등원과 하원사이 6시간이 비는데, 집안일과 밥 챙겨먹는 시간을 제외하면 빠듯하게 4시간 정도의 자유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이 시간은 운동과 책 읽기, 투자/전공/영어 공부로 살뜰히 채워나갈 생각이다. 하지만 자기계발에 매몰되어 육아휴직의 첫 번째 목적인 가족을 잊어선 안 되겠다.


아이에게도 아내에게도 나에게도 모두에게 너무나 좋았던 육아휴직이 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