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09 오토마타

온가족이 함께 챙겨보는 TV 프로그램 두 개 중 하나는 <금쪽같은 내 새끼>. 여기서 오박사님이 늘 강조하는 것 중 하나는 아이의 감정을 부정하지 말라는 것.

돌아보면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부정했던 적이 많았던 것 같다. “왜 울어?” 라고 물어볼 게 아니라 “우리 딸이 많이 슬펐구나.”라고 공감을 표현해야 한다.

같은 자극에도 다른 반응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오토마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감정을 부정하는 것은 나의 오토마타를 정답으로 여기고, 상대방의 오토마타에 오류가 있다고 판정을 내리는 것과 같다.

너무나 당연한 원리를 ‘인식’하게 된 후에 그래도 조금은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게 된 것 같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하다.

240227 대출잔액 700만원

2021년 8월 집을 사기 위해 회사를 통해 SC은행에서 7천만원을 빌렸다. 1년 거치 8년 상환. 만기는 2030년 8월.

연말 연초 개인 조직 인센티브, 적치보상, 연말정산환급, 배당금 그야말로 영끌을 해서 가열차게 대출을 상환했고 이제 700만원 남았다.

3월 월급과 현대차 배당금이 나오면 대출 상환을 완료할 수 있을 듯 하다. 빠르면 3월 말 자유의 몸이 된다.

2020년 육아휴직의 경험으로부터 자유가 곧 행복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곧 자유이자 행복이다.

써야 할 돈을 쓸 때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면 한다. 가족과 맛있는 거 먹으러 식당에 갔을 때 음식의 가격을 따지고 싶지 않다. 공연을 예매할 때 가장 좋은 좌석을 선택하고 싶다. 후배들과 밥먹을땐 밥과 커피 모두 사주고 싶다.

대출이 있을 때는 쓸 돈을 마음 편히 쓸 자유를 온전히 누릴 수 없는 것 같아서, 최근 몇 달 동안에는 대출 갚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이제 끝이 보인다. 자유는 봄과 함께 온다.

240127 팀장이 된 이유 2

팀장이 된 이유 1편에서 다 적지 못한, 팀장이 된 이유를 추가로 끄적여 본다.

곧 만 42세가 된다. 만 50세 넘어서까지 직장인으로 살고 싶진 않다. 시간이 많지 않다.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동안 세상으로부터 받은 것을 최대한 세상에 돌려주고 싶다.

개인 기여자로 일하는 것과 팀장으로 일하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을까? 후자라고 생각했다.

개인 기여자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게 더 즐겁고 편안하게 느껴지지만, 다행히 오랫동안 파트 리더, 프로젝트 리더를 하면서 리더의 역할에서 오는 재미와 보람도 잘 알고 있다.

언제까지 팀장 역할을 수행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팀장 역할을 하는 동안에는 팀장으로서 최대한 기여를 하고 싶다. 일도 일이지만 무엇보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240109 정체성

최근 아이는 어린이집에 가는 걸 힘들어한다. 무엇이 힘드냐고 물으면 겨우 들을 수 있는 답변은 “귀찮아서”.

등원에 실패해서 나와 아내가 한 번씩 출근을 못한 날도 있었다.

월요일 등원은 특히 더 어렵다. 어제는 아침 간식을 먹은 후 결국 눈물을 보였다.

힘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출근하기 위해서라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정체성에 호소하는 것이었다.

“힘든 걸 이겨내는 사람이 될래? 포기하는 사람이 될래? 아빠한테 어떤 사람인지 보여줘.”

그러면서 안아주고 등을 토닥토닥 해줬다.

아이는 고민하더니, 이겨내는 사람이라는,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정체성을 증명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스로 선택한 정체성은 본능을 이겨낼 수 있는 강한 힘을 지닌다.

240106 팀장이 된 이유

  • 2017년 ~ 2019년 파트 리더
  • 2020년 육아휴직
  • 2021년 ~ 2022년 파트 리더
  • 2023년 프로젝트 리더
  • 2024년 ~ 팀장

파트 리더, 프로젝트 리더를 하는 내내 개발자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결국에는 팀장이 되었다. 그 이유를 기록해본다.

조직의 기술수준을 높이고, 개발자들이 고생 좀 덜하면서 즐겁게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우리가 개발한 서비스의 품질을 높인다는 목적을 가지고, 작년에 Kubernetes, KrakenD, Istio, Kafka, Argo CD 등 다양한 기술과 방법론을 도입했다.

즐거웠고 보람있었고 운이 좋아 상도 받았다. 올해는 팀 단위로 확장해서 진행해야 하는 단계가 되었고, 책임감 있게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필요한 역할을 맡기로 했다.

최근에 다시 본 영화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 부패 공무원 출신으로 민간인도 아니고 건달도 아닌 반쪽짜리 건달, 반달로 불리는 최익현을 보면서 꼭 나 같다는 생각을 했다.

리더도 아니고 관리자도 아니고 개발자도 아닌 애매한 존재. 개발자로 돌아가고 싶은 속내를 가끔씩 드러내어 구성원들에게 불안감을 주는 불편한 존재.

개발자로 돌아가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실무를 완전히 내려놓고 권한과 책임을 가진 팀장으로서 제대로 리더, 관리자 역할을 해보려한다.

힘든 만큼 많이 배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