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정원

오래전 영화관을 찾았을 때 예고편으로 이 영화를 처음 접했다. 이 영화에 관심이 갔던 것은 우리 선배들의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삼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시대배경 속에 두 남녀의 사랑은 어떻게 비극적인 결말을 맺게 될지 궁금했다.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배우 지진희가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현우역으로, 염정화는 그를 숨겨준 윤희역으로 나온다. 두 남녀는 스폰지에 물이 스며들 듯 쉽게 사랑에 빠지고 부부나 다름 없는 생활을 이어나가게 된다. 그러나 민주화운동을 함께 하던 동료들을 저버릴 수 없었던 현우는 떠나기를 작심하고, 떠나 보내면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에 휩싸인 윤희는 그를 보내지 않으려고 한다. 결국 서울로 떠난 현우는 검거되어 무기징혁을 살게 되고 윤희는 후에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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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만에 출소한 현우가 어머니로부터 윤희의 죽음을 알게 되고 그녀와 함께했던 공간을 따라 그녀를 추억하면서 영화는 진행된다. 영화의 후반부에 현우는 윤희가 남긴 자신의 딸을 만나게 되는데 딸이 현우에게 묻는다.

“아버지는 행복했나요?”

현우가 대답한다.

“아닌 것 같아. 그 때는 자기만 생각하면 나쁜놈이 되는 시대였거든.”

나는 이 대사가 가장 가슴에 남는다. 평범한 두 남녀가 평범하게 사랑할 수 없었던 어두웠던 우리의 멀지 않은 과거가 씁쓸하게만 느껴졌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등이 수 많은 선배들이 흘린 피로 성취한 것임을 작금의 젊은이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좀 더 좋은 세상을 꿈꾸어도 목숨을 내어 놓을 필요가 없는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쉬는 나는 역시 이기적인 사람일까?

“자기만 생각해도 나쁜놈이 되는 시대”는 아니지만 적어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고 있다면 아직도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비합리와 부조리에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등이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조금씩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나를 포함하여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자기만 생각하며” 과연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선택과 책임은 항상 개인의 몫이겠지만 혼자가 아닌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항상 고민해야 할 것이다.

컴퓨터에 관한 아련한 추억

어렸을 때 우리집은 가난했지만 부모님께서는 항상 나에게 좋은 교육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애쓰셨다. 덕분에 나는 국민학교 시절부터 집에서 컴퓨터를 가지고 놀 수 있었다. 처음 컴퓨터를 살 때 아버지께서 286 컴퓨터는 바로 가지고 올 수 있고 386 컴퓨터는 한 달 기다려야 된다고 하시며 나에게 선택권을 주셨다. 급한 마음에 나는 286을 선택했다. 낭만(?)은 짧고 인생은 길었다 ……

나의 첫 컴퓨터는 삼보 컴퓨터였고 286 AT 제품이였다. 컴퓨터를 부팅하면 삼보컴퓨터에서 제공해주는 프로그램이 떴는데 이 것이 내내 골치꺼리였다. 컴퓨터학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는 DOS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우리집 컴퓨터에 자동으로 뜨는 프로그램이 영 탐탁치 않았지만 아는 것이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컴퓨터하면 역시 게임이 백미! 학원을 다니면서 친구들과 게임을 복사해서 즐기곤 했는데 학원에서 되던 게임이 집에서 안되는 현상을 경험하면서부터 메모리 관리를 공부하게 되었다. 특히 삼국지 무장쟁패는 600k 이상의 기본 메모리를 요구했는데 처음에는 도저히 이를 맞출 수가 없었다. 결국 config.sys와 autoexec.bat의 역할을 알게 되었고, autoexec.bat에서 띄우는 한글 폰트 프로그램를 제거하자 600k 이상의 기본 메모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 화면에서 삼국지 무장쟁패의 타이틀을 보는 순간 동생과 나는 얼싸앉고 폴짝 폴짝 뛰며 기쁨을 만끽했다. 나는 그렇게 컴퓨터를 조금씩 알아갔다.

나중에는 역시 게임 때문에 OS를 바꾸어야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집 컴퓨터에 깔려있는 OS가 MS-DOS가 아닌 DR-DOS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더욱 충격적이였던 것은 DR-DOS가 쓰기 금지 되어 있는 D드라이브에 깔려 있다는 사실이였다. 그때 나는 앞으로 절대 메이커 PC를 구매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컴퓨터 학원에서는 GW-BASIC을 배웠다. 프로그램을 짠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재밌었다. 내가 생각한데로 프로그램을 작성하고 그 것이 그대로 동작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나에게 큰 성취감과 즐거움을 가져다 주었다. GW-BASIC을 어느정도 배웠을 당시에 퇴마록을 열심히 읽고 있었기에 <좀비와 현암의 결투>라는 유치찬란한 게임을 만들어 보았다. 굳이 장르를 붙이자면 턴제 시뮬레이션 게임이라고 해야할까? 좀비와 현암 각각 4가지의 메뉴를 가지고 있다. 현암을 예로 들자면 “기 모으기”, “월향검 던지기” 등이 있는데 현암의 동작은 플레이어가 선택하고 좀비의 동작은 그야 말로 렌덤이였다.

PC 통신에 대한 추억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PC 통신에서 첫 사랑의 메세지를 받았을 때 그 떨림은 아직도 생생하다. 천리안에서 만나 종종 신의 손 게임을 겨뤄보곤 했는데 둘다 최고 600타 근처에서 용호상박을 이루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그녀가 1000타를 넘기 시작했다. 세벌식을 연습했던걸까?

나는 본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 아닌데 컴퓨터에 관한한 호기심이 왕성했던 것 같다. 인터넷이라는 개념이 처음 나왔을 당시에 PC 통신에서 소켓을 써서 인터넷에 접속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도스와 윈도우가 아닌 새로운 운영체제에 대한 관심도 많아서 리눅스를 수도 없이 설치해 봤다. 레드햇이 대세이던 그 시절 안 깔아본 배포판이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IBM의 OS/2 WARP도 설치해봤다. 그러나 c 프로그래밍도 못하고 vi도 못쓰던 시절 리눅스는 그저 설치가 전부였다.

나는 처음부터 컴퓨터가 좋았다. 인문계의 적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컴퓨터 이외의 다른 전공을 생각해 본적이 없을 정도로 난 쭉 한길을 따라 달려왔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바라던 프로그래머(?)가 되었다. 이제 시작이라 프로그래머라기보다 코더에 가깝지만. 하고 싶었던 일을 직업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음에 항상 감사할 일이다.

남한산성

남한산성
김훈 지음/학고재

지금 다니는 회사에 면접 보던 날 오후 하이힐을 신은 친구와 정장을 입은 나는 남한산성에 나들이(?)를 다녀왔다. 가파른 산성을 오르 내리며 땀을 뻘뻘흘렸던 기억을 되살리며 이 책을 읽었다. 부끄럽게도 고등학교때 국사공부를 제대로 안했는지 남한산성에 엮인 그 어떤 역사적인 사연도 기억해내지 못한체로 말이다.

김훈의 작품은 <칼의 노래>에 이어 이책이 나에게는 두번째다. 그의 문체는 소재가 주는 느낌 때문인지 몰라도 단단함과 간결함 속에 날이 서있다. 간결함 뒤에 남아 있는 여백에 그가 보여주고 싶은 것의 대부분이 숨어 있다고 해야할까?

<남한산성>은 청나라에 기세에 밀려 남한산성에 억류된 조정의 운명을 그리고 있다. 밖으로 나갈 수도, 그렇다고 안에서 버틸 수도 없는 진퇴양란의 상황에서 벌어지는 주전파와 주화파의 갈등이 이 소설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성문을 열어야 할 시간이 다가올 수록 짙어지는 조선 임금 인조의 체념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나라면 의를 따랐던 김상헌과 현실을 직시한 최명길 중 누구의 길을 걸었을까? 결국 인조는 스스로 문을 열고 나와 청나라의 칸에게 수모를 당하고 세자와 왕자를 청국에 보낸다. 저항으로 목숨을 잃은 이를 제외한 나머지 백성들은 인조의 굴욕과 상관없이 그들의 삶을 변함없이 이어가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이 의문의 정답은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쥐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시대에 중요한 가치는 그 시대를 살아냈던 사람들이 결정하므로.

그 날이 오면

항상 바라는 내일이 오면 환희는 얼마 안가서 사그러들지만 그래도 기다려지는 내일이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내가 바라는 그 날은 지금으로부터 약 3년 후. 여러가지 변수가 있을 수 있겠지만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간다면 3년 뒤에 집과 회사는 모두 판교에 있을 것이다.

작년에는 우리 가족 구성원 4명은 모두 전국에 뿔뿔히 흩어져 있었다. 아버지는 경남 창원, 동생은 강원도 원주, 어머니는 서울 그리고 나는 대전에 있었는데 온가족이 모두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올해 들어 어머니가 창원으로 이사가시면서 부모님은 함께 계시지만 동생은 여전히 원주에 있으며 나는 분당에서 사택에 거주하며 회사에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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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연구소는 현재 분당 서현역에 있지만 3년 후 판교 연구단지에 입주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현재도 너무나 좋은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긴 하지만 판교 연구소에 입주하게 되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모든 연구원들의 방은 빛이 잘들고 환기가 잘되는 창가쪽에 배치한다고 한다. 게다가 연구소 내에 휘트니스 센터와 사우나 시설까지 갖출 예정이라고 하니 연구원들의 기대가 크다.

이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우리 가족은 판교에 입주할 예정이다. 사택에서도 너무 좋은 친구, 형들과 즐겁게 지내고 있긴 하지만 편안함과 안락함이 우리집만할까? 종종 어머니가 보내주시는 사진을 바라보면 우리집과 가족이 어찌나 그립던지!

새로운 집에 이사가게 되면 책장을 잔뜩사서 그 동안 모아둔 책을 가지런히 꽂아 두고 차 한잔 마시며 조용히 책을 읽고 싶다. 아직 금전적인 문제로 시작을 못했지만 그때까지 끈기 있게 피아노를 배운다면 집에서 피아노 연주도 하고 싶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3년 후 나의 능력일 것이다. 어떤 실력과 인격을 가지고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까? 3년 후의 좋은 환경을 꿈꾸는 것도 좋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을 3년 동안 바지런히 가꾸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네 꿈에 미쳐라

네 꿈에 미쳐라
김상훈 지음/미래를소유한사람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안철수다. 엔지니어로서 혹은 경영자로서 가지고 있는 그의 탁월한 능력 때문에 그를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 때문에 나는 그를 존경한다. 평생 따라가고 싶은 그의 가치관은 그의 저서 <영혼이 있는 승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우주의 절대적 가치가 있든 없든 사람으로서 당연히 지켜나가야 할 중요한 가치가 있다면 아무런 보상이 없더라도 그것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세에 대한 믿음만으로 현실과 치열하게 만나지 않는 것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 또 영원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살아 있는 동안에 쾌락에 탐닉하는 것도 너무나 허무한 노릇이다. 다만 언젠가는 없어질 동시대 사람들과 좀더 의미 있고 건강한 가치를 지켜가면서 살아가다가 별 너머 먼지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 생각한다.”

 
이 문장을 떠올리며 보상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옳다고 믿는 것들을 지키고 살아가며, 사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야겠다는 바램을 가져보지만 항상 이기적인 마음이 앞서 실천은 쉽지 않다.

안철수에 대한 책을 대부분 읽어본 나에게 이 책은 조금 아쉬웠다. 나처럼 안철수의 팬(?)인 동아일보 경제부기자가 쓴 이 책은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 읽으면 적당할 정도의 위인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예를 들어 컴퓨터 사용자들이 보안 패치를 미리 하지 않아 바이러스 공격에 무차별로 당하는 부분은 아래와 같다.

안철수는 결국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어야 했다.
“도대체 언제까지 당하고만 있으라는 것이냐!”

이책을 읽은 작음 보람이 있다면 안철수 연구소를 떠나 미국에서 유학중인 그가 어떻게 지내는가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낮에는 학생으로 공부하면서 밤에는 벤처캐피탈 회사에 다닌다고 한다. 안철수의 삶의 과정을 비교적 잘 알고 있는 나에게는 조금 지루한 책이였지만 “왜 의사라는 좋은 직업을 두고 프로그래머가 되었을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그의 삶을 따라가 볼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항상 성실히 노력하는 자세와 보상을 떠나 가치있는 일에 매진하고자 그가 우리나라에 다시 돌아 왔을 때 어떤 위치에서 어떤 일을 하며 사회에 기여하게 될 지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