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도전, 서혜경의 라흐마니노프

오랫동안 기다렸던 공연을 어제 밤에 단신으로 다녀왔다. 새롭게 시작한 일때문에 매일 오전 회의가 이어지는 바쁜 요즘이지만, 밤을 새는 한이 있어도 공연은 꼭 봐야겠다는 심정으로, 공연 후 회사로 돌아와 일을 하기로 마음먹고 길을 나섰다.

세번째로 찾아가는 예술의 전당은 낯설지 않았다. 공연이 곧 시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수 많은 인파가 음악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홀로 길을 재촉하여 음악당에 도착한 후, 클럽발코니 코너에서 예매한 표와 프로그램 북을 받았다. 20분 전에 도착해서 시간의 여유가 조금 있었지만, 프로그램 북을 찬찬히 읽어볼 요량으로 공연장에 들어섰다. 내 주변에 앉은 분들 역시 나 처럼 혼자 오신 분들이라 혼자 클래식 공연을 관람하는 것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같이 간 사람이 지루해 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도 없고. ^^;

로시니
오페라 ‘도둑까치’ 서곡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2번 Op.18

-인터미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3번 Op. 30

공연은 KBS교향악단의 ‘도둑까지’서곡으로 시작되었다. KBS교향악단에게는 죄송스러운 이야기지만 서혜경 선생님(?)의 라흐마니노프를 빨리 듣고 싶은 마음에 ‘도둑까치’서곡이 빨리 끝나길 바랬다. 바램대로 ‘도둑까치’서곡이 끝난 후, 드디어 서혜경 선생님이 무대로 걸어나오셨고, 환호와 갈채가 터져나왔다.

그리고 잠시 후, 라흐 피협 2번의 피아노 솔로 시작부분이 꿈처럼 들려왔다. ‘건반 위의 활화산’이라는 별명 답게 그녀의 연주는 힘이 있었고, 그 순간 나의 시야는 흐려졌다. 불굴의 의지로 암이라는 병마를 이겨내고 다시 당당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 그녀의 삶의 이야기가 감동적이여서 그랬는지, 음악이 주는 감동의 크기가 내가 받아들이기 벅차서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강하게 연주하는 부분, 빠르게 연주하는 부분에서 그녀의 모습은 정말 열정적이였다. 최선을 다해 연주하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역시나 익숙한 2번은 큰 감동을 주었다. 인터미션에서 잠깐 만난 상운이와 나는 1악장에서 피아노 소리가 너무 작아서 아쉬웠다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만.

인터미션이 지나고 드디어 3번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45분을 연주하는 3번의 경우 많이 들어보지 않아서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잠결에 들었던 부분들이 가슴에 남아 있었는지 충분히 선율을 느낄 수 있을만큼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역시나 최고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작품이라는 것을 건반 위를 수놓는 손의 움직임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손의 주인은 방사선 치료를 마친지 3개월 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3번의 3악장이 끝났을 때 관객들은 하나가 되어 최고의 박수와 찬사를 보냈다. 그녀가 연주한 음악 자체의 훌륭함에 더하여, 자기를 이겨내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최선의 연주를 마친 그녀의 모습이 숭고했기 때문이였으리라.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의 박수는 그 끝을 알 수 없도록 계속되었다. 몇 번의 고사 끝에 그녀는 마이크를 손에 들고 나왔고, 관객들은 약속이나 한 것 처럼 박수를 멈추고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울음 섞인 목소리로 그녀는 암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손을 다시 쓸 수 있도록 극진히 치료해준 노동영 교수님에게 쇼팽의 야상곡을 바친다며 앵콜곡의 연주를 시작했다. 모든 조명이 꺼지고, 피아노 주변에 얇은 붉은 빛이 감돌았다. 그리고 들려오는 감미로운 선율.

야상곡을 연주하는 그녀의 손이 건반을 완전히 떠났을 때, 관객들은 어김없이 환호화 박수를 보냈다. 그녀는 무대를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마이크를 손에 들고 말했다.

“암이 다시 재발하지 않고, 여러분들에게 좋은 음악 들려드릴 수 있기를 바라면서, 슈만의 트로이메라이 들려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울려 퍼지는 감미로운 선율에 나는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연주하는 모습이 얼마나 숭고하고 아름다웠던지, 그 순간을 지금 다시 되돌리고 싶을 정도로 행복했다. 트로이메라가 끝난 후 다시 마이크를 잡은 그녀는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무대를 떠났고 관객들은 그제서야 따뜻한 마음으로 그녀를 놓아 주었다.

오늘 아침 미팅 준비를 위해 11시 조금 넘어 회사로 돌아와 심야야근을 해야 했지만, 나는 행복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아름다운 음악과 아름다운 사람들로부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나는 내 삶에 그러한 행운이 주어진 것에 감사한다.

Martha Argerich Presents: Chopin, Schubert, 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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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 스패셜 리스트 임동혁의 첫번째 음반이다. MP3로 듣기 시작하여, 최근에는 CD를 구입하여 CDP로 감상하고 있다. 최근에 구입한 이어폰 MDR-E888과 함께!

국내에서는 임동혁, 김정원을 쇼팽 스패셜리스트로 뽑을 수 있을 듯 한데, 같은 곡의 다른 연주를 들어보면 확실히 스타일이 다른 것을 느낄 수 있다. 임동혁의 연주는 물흐르듯 자연스럽워 선율이 참 아름답게 느껴지는 반면에, 김정원의 연주는 절제된 힘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두 사람 각자의 스타일을 모두 좋아하는 편.

1. Scherzo No.2 In B Flat Minor, Op.31 (Frederic Chopin)    
2. Nocturne In D Flat, Op.27 No.2    
3. Ballade No.1 In G Minor, Op.23    
4. Etude In C, Op.10 No.1    
5. 4 Impromptus, D.899: No.1 In C Minor: Allegro Molto Moderato (Franz Schubert)    
6. 4 Impromptus, D.899: No.2 In E Flat: Allegro    
7. 4 Impromptus, D.899: No.3 In G Flat: Andante    
8. 4 Impromptus, D.899: No.4 In A Flat: Allegretto    
9. La Valse – Poeme Choregraphique (Maurice Ravel)

슈베르트나 라벨은 익숙하지 않아서 처음에는 1~4번 트랙만 열심히 들었다. 쇼팽 스케르초 2번은 김정원의 앨범에서, 2번 트랙의 야상곡은 랑랑의 DVD에서, 발라드 1번과 에튀드 10-1은 피아노 학원에서 현택형이 연주하는걸 들어서 친숙했다.

개인적으로는 임동혁의 쇼팽 발라드 1번 연주는 최고라고 생각한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연주를 최근에 들어 보았는데 나에게는 매끄럽지 않고, 템포가 느려 답답한 느낌을 주었으나 임동혁의 연주는 거침 없이 낭만선율을 쏟아내어 온전히 음악에 빠질 수 있게 한다.

CD로 음악을 듣는 장점 중에 하나가 음반 전체를 끝까지 듣게 된다는 것. CDP의 불편함 덕분에 마지막 트랙까지 듣게 되면서 슈베르트의 즉흥곡과 라벨의 라 발스까지 접하게 되었다. 슈베르트의 즉흥곡은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평이하게 듣기에 좋은 정도라서 조금 더 집중해서 들어봐야 할 듯하다. 라벨의 라 발스는 처음에는 이해하기 힘든 현대음악처럼 난해하기 그지 없었는데 계속 듣다 보니 중간중간에 느낄 수 있는 부드러운 선율이 좋았다. 점차 난해한 부분들이 듣기 좋은 선율과 조화를 이루어 가면서, 이 곡을 좋아하게 되었다.

다음 달에는 임동민, 임동혁 형제의 쇼팽 콩쿠르 라이브 2005 혹은 Chopin Recital를 구입해서 들어볼 예정.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피아노 협주곡은 어떨까?

야마하음악교실 제2회 작은음악회

어제 저녁에는 현택형의 연주를 듣기 위해 야먀하음악교실 제2회 작은음악회를 다녀왔다. 현택형이 표를 2장 주어서 상운이와 함께 다녀왔는데, 내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컵라면으로 급하게 허기를 때우고 건대입구역 근처의 나루아트센터에 들어섰다.

연주를 연습하는 사람들로 분주한 느낌이였고, 관람객은 생각보다 적었다. 7시 30분이 되어 공연장으로 들어서, 피아노를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자리로 향했다. 피아노가 무대에서 너무 왼쪽에 치우친 것이 상당히 아쉬웠다. 상운이와 나는 현택형이 연주할 쇼팽의 발라드 1번만을 듣기 위해 왔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피아노 연주를 제대로 보고 듣고 싶었기 때문.

1부가 끝나고 2부 첫 곡으로 드디어 현택형의 쇼팽 발라드 1번 연주! 많이 긴장해서 그런지 실수가 조금 있었지만, 워낙 다른 참가자들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고난이도의 연주라 인상적이였다. 플룻, 바이올린, 첼로, 섹소폰 등 다양한 악기의 연주가 있었는데, 1년 미만으로 배운 사람들이 대다수라 어설픈 면도 없잖아 있었지만, 반면에 신선한 느낌도 많이 들었다. 대략 20대부터 50, 60대까지의 직장인으로서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쁜 와중에도 틈틈히 연습해서 이렇게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멋진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여러 악기의 연주를 들으면서 악기별 투자한 시간대비 성능(?) 혹은 성과(?)비를 생각해보니, 피아노가 가장 낮은 것 같고 그 다음은 바이올린 첼로인 것 같다. 두 손으로 치는 피아노는 어렸을때 부터 하지 않으면 힘들다는 어려움이 있고, 두 손으로 빠르고 정교하게 연주해야 하기 때문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 같고, 바이올린이나 첼로 같은 현악기는 소리를 제대로 내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다. 듣기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 연습해야 할 듯. 반면에 그러한 면에서 가장 유리해 보이는 것은 단연 섹소폰! 6개월 배우셨다는, 머리가 살짝 희끗하시고 인상 좋으신 어르신의 운치있는 연주는 정말 낭만적이였다.

열심히 하면 내년 겨울에는 나도 제 3회 음악회에서 연주할 수 있지 않을까? ㅋㅋ

Etude

지난 화요일 피아노 레슨은 완전히 암울했다. 지난주 선생님이 지적해주신 부분을 염두해서 세심하게 연습한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대충대충 연습하다 보니 선생님이 보시기에는 한주 동안 전혀 발전이 없었던 것 같았다.

아무렇게나 건반을 누르다가 선명하면서도 부드러운 소리를 내기 위해 타건 방법을 바꾸었더니 마치 풍맞은 사람처럼 빠르게 치려고 하면 손이 마음대로 안움직인다. 어렸을때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뼈져리게 깨달으며, 어렸을때 그만둔 것을 후회하는 한편으로 과연 노력하면 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마주하며 불안함에 떨고 있다. 그러나 몇 년은 꾹 참고 나아갈 생각이기에 그리 조급하지는 않다.

최근의 성의없는 연습을 반성하며, 레슨 이후에는 항상 마에스트로(?)가 일러준 것을 상기하며 재미위주가 아니라 실력향상을 위주로 연습을 하고 있다. 오늘도 그렇게 잘 움직이지 않는 4번 손가락에 영혼을 불어넣기 위해 스타카토를 열심히 연습하던 중 현택이형이 잠깐 들르셨다.

잠깐의 담소를 나눈 후, 현택형은 연습을 하기 위해 방으로 돌아갔고, 곧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체르니 30번을 치던 나는 치던 것을 멈추고 넋을 잃은체 그 음악에 빠져들었다. 그 곡은 바로 쇼팽 에튀드 Op. 10, No. 1 이였는데, 최근에 많이 듣는 곡이다. Etude는 연습곡을 의미하는데 쇼팽의 에튀드는 연습곡이면서도 굉장히 아름답다.

지금은 그저 부러울 따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