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

무엇을 배우든지 항상 고비는 찾아오기 마련인 것 같다. 처음에 어느정도 배우고나면 쉽게 재미를 느끼고 실력이 금새 일취월장 할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지만, 얼마안되어 어려움을 느끼고 흥미를 잃고 마는 것이다.

지금 피아노를 배우는 나의 모습이 딱 그러하다. 생각했던 것 보다 빨리, 시작하기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트로이메라이를 대략 연주할 수 있게 되었지만, 체르니 30번 고행(?)은 오랫동안 제자리에 머무는 느낌이고 손가락도 더 이상 유연해 지지 않는 것 같다.

특히나 새로운 악보를 접하면 더듬더듬 하다가 익숙해지기까지의 시간이 너무 오래걸려서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초견은 커녕 낮은 음자리표의 음표들은 아직도 헤깔리다보니 이 방면에 너무 소질이 없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때가 많다.

그러한 문제를 토로했더니 선생님께서 오늘 말씀하시기를 누구나 처음 악보를 접하면 그런거라고 끈기를 가지고 처음 악보를 접했을 때 4, 5번 반복하라고 하셨다. 선천적인 능력이 부족하다면 남보다 2, 3배의 노력할 각오를 해야하는데, 내가 너무 쉽게 얻으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하고 반성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하농, 체르니30번, 소나티네를 잠시 쉬면서, 피아노를 시작할 때 목표로 했던 이사오 사사키의 “99 Miles from you”를 연습하고 있다. 지금의 고비를 넘어 목표했던 이 곡을 끝까지 부드럽게 연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볼 생각.

최선을 다해봐도 잘 안되면, 좀 더 쉬운곡으로 돌아가야겠지…

연습할 또 하나의 곡으로 쇼팽의 Prelude No. 4를 선택하고, 선생님께 연주를 부탁드렸다. 잘 모르는 곡의 악보를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기에…

초견으로 연주하는거라고 하시던 선생님의 연주가 어찌나 감동적이였는지 그 순간이 그리울 지경이다. 이 곡 역시 끈기를 가지고 끝까지 멋지게 연주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련다! 

회사에 피아노

회사에 체류하는 시간이 보통 12~14시간 정도 되다 보니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면 피아노를 연습할만한 여유가 없었다. 얼마전 같은 층에 디지털 피아노는 가져다 놓은 방을 발견한 후, 고민고민하다 과감히 아직은 혼자 쓰고 있는 내 방에 디지털 피아노를 들여 놓기로 했다.

아름다운 사람(http://cafe.naver.com/samsungksk.cafe)을 통해 소화물 운송을 의뢰해서 오늘 사택에 있는 디지털 피아노를 회사로 가져왔는데 친절히 잘 운송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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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회사에 앉아 있다보면 따분하기도 하고 스트레스도 쌓이는데, 쉬는시간, 식사시간에 조금씩 연습하면 좋을 듯 하다. 끝없는 디버깅에 심신이 지칠때면 소나티네를 흥겹게 연주 해보자!

암보의 어려움

피아노 연주를 포스팅 할때가 되었는데 계속 녹음작업(?) 실패로 올리지 못하고 있다. 녹음하기 위해 연습하고 있는 곡이 지금까지 녹음해서 포스팅 했던 곡들보다 훨씬 길어서 외워서 연주하기도 힘들고, 미스 없이 끝까지 연주하는 것도 현재 실력에선 하늘의 별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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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보를 너무 못하기 때문에 한장씩 복사해 테이프로 붙여 펼쳐놓고 녹음을 시도해 보았지만, 악보만 계속 쳐다보고 건반은 느낌으로만 치다보니 미스가 많이 발생했다. 지금까지는 암보를 해도 건반을 보고 치는 것이 아니라, 눈을 감고 치거나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검은 검반을 쳐야하는 일도 빈번하고, 손의 움직임이 복잡하고 빨라야 하기 때문에 적절히 건반을 보면서 연주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눈으로 건반을 보고 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손이 꼬이는 일과 미스나는 일이 적고 안정적으로 연주할 수 있었다. 다음주 중에는 연주곡을 포스팅 할 수 있을 듯! 그리고 그 다음 포스팅할 연주곡은 슈만의 트로이 메라이가 될 예정

매일 꾸준히 정해놓은 횟수를 채워나가는 식으로 연습했더니, 점점 손가락이 독립되는 것을 느끼고 하농도 상당한 속도로 부드럽게 칠 수 있게 되었다. 연습방법을 바꾼 덕분인지 선생님께서 최근 몇 주 동안 많이 좋아졌다고 하시면서, 조금 더 하면 베토벤 비창 소나타 같은 것도 해볼 수 있겠다고 하셨다!

부담 없이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연습하고 있다. 딱 지루하고 않을만큼 하루에 50분 정도 꾸준히. 몇 달만 더 꾸준히 노력하면 피아노를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연주할 수 있는 몇 곡으로도 즐겁지만… ^^

임동혁 라벨 라 발스

요즘 가장 즐겨 듣는 곡이다. 현대 음악이라 그런지 난해한듯 하면서도, 계속 들으면 들을 수록 매력적이라 자꾸 찾게 된다. 원래 피아노 곡이 아닌 것을 피아노 버젼으로 편곡한 곡이라 그런지 최고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곡이라고 한다. 매일 CD로 듣다가 이렇게 임동혁 군이 직접 연주하는 동영상을 찾게 되어 기쁠 따름. 좀 더 일찍 이 세계(?)를 알았다라면 공연장에서 직접 감상했었을텐데 너무 아쉽다.

열정과 도전, 서혜경의 라흐마니노프

오랫동안 기다렸던 공연을 어제 밤에 단신으로 다녀왔다. 새롭게 시작한 일때문에 매일 오전 회의가 이어지는 바쁜 요즘이지만, 밤을 새는 한이 있어도 공연은 꼭 봐야겠다는 심정으로, 공연 후 회사로 돌아와 일을 하기로 마음먹고 길을 나섰다.

세번째로 찾아가는 예술의 전당은 낯설지 않았다. 공연이 곧 시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수 많은 인파가 음악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홀로 길을 재촉하여 음악당에 도착한 후, 클럽발코니 코너에서 예매한 표와 프로그램 북을 받았다. 20분 전에 도착해서 시간의 여유가 조금 있었지만, 프로그램 북을 찬찬히 읽어볼 요량으로 공연장에 들어섰다. 내 주변에 앉은 분들 역시 나 처럼 혼자 오신 분들이라 혼자 클래식 공연을 관람하는 것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같이 간 사람이 지루해 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도 없고. ^^;

로시니
오페라 ‘도둑까치’ 서곡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2번 Op.18

-인터미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3번 Op. 30

공연은 KBS교향악단의 ‘도둑까지’서곡으로 시작되었다. KBS교향악단에게는 죄송스러운 이야기지만 서혜경 선생님(?)의 라흐마니노프를 빨리 듣고 싶은 마음에 ‘도둑까치’서곡이 빨리 끝나길 바랬다. 바램대로 ‘도둑까치’서곡이 끝난 후, 드디어 서혜경 선생님이 무대로 걸어나오셨고, 환호와 갈채가 터져나왔다.

그리고 잠시 후, 라흐 피협 2번의 피아노 솔로 시작부분이 꿈처럼 들려왔다. ‘건반 위의 활화산’이라는 별명 답게 그녀의 연주는 힘이 있었고, 그 순간 나의 시야는 흐려졌다. 불굴의 의지로 암이라는 병마를 이겨내고 다시 당당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 그녀의 삶의 이야기가 감동적이여서 그랬는지, 음악이 주는 감동의 크기가 내가 받아들이기 벅차서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강하게 연주하는 부분, 빠르게 연주하는 부분에서 그녀의 모습은 정말 열정적이였다. 최선을 다해 연주하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역시나 익숙한 2번은 큰 감동을 주었다. 인터미션에서 잠깐 만난 상운이와 나는 1악장에서 피아노 소리가 너무 작아서 아쉬웠다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만.

인터미션이 지나고 드디어 3번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45분을 연주하는 3번의 경우 많이 들어보지 않아서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잠결에 들었던 부분들이 가슴에 남아 있었는지 충분히 선율을 느낄 수 있을만큼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역시나 최고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작품이라는 것을 건반 위를 수놓는 손의 움직임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손의 주인은 방사선 치료를 마친지 3개월 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3번의 3악장이 끝났을 때 관객들은 하나가 되어 최고의 박수와 찬사를 보냈다. 그녀가 연주한 음악 자체의 훌륭함에 더하여, 자기를 이겨내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최선의 연주를 마친 그녀의 모습이 숭고했기 때문이였으리라.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의 박수는 그 끝을 알 수 없도록 계속되었다. 몇 번의 고사 끝에 그녀는 마이크를 손에 들고 나왔고, 관객들은 약속이나 한 것 처럼 박수를 멈추고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울음 섞인 목소리로 그녀는 암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손을 다시 쓸 수 있도록 극진히 치료해준 노동영 교수님에게 쇼팽의 야상곡을 바친다며 앵콜곡의 연주를 시작했다. 모든 조명이 꺼지고, 피아노 주변에 얇은 붉은 빛이 감돌았다. 그리고 들려오는 감미로운 선율.

야상곡을 연주하는 그녀의 손이 건반을 완전히 떠났을 때, 관객들은 어김없이 환호화 박수를 보냈다. 그녀는 무대를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마이크를 손에 들고 말했다.

“암이 다시 재발하지 않고, 여러분들에게 좋은 음악 들려드릴 수 있기를 바라면서, 슈만의 트로이메라이 들려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울려 퍼지는 감미로운 선율에 나는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연주하는 모습이 얼마나 숭고하고 아름다웠던지, 그 순간을 지금 다시 되돌리고 싶을 정도로 행복했다. 트로이메라가 끝난 후 다시 마이크를 잡은 그녀는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무대를 떠났고 관객들은 그제서야 따뜻한 마음으로 그녀를 놓아 주었다.

오늘 아침 미팅 준비를 위해 11시 조금 넘어 회사로 돌아와 심야야근을 해야 했지만, 나는 행복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아름다운 음악과 아름다운 사람들로부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나는 내 삶에 그러한 행운이 주어진 것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