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지만, 하루키라는 사람과 그 사람의 진짜 이야기를 담은 수필은 좋아하는 편이다. 성실하고 꾸준한 삶을 위해 달리기를 한다는 점이 그를 좋아하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인 듯 하다.

이 책은 광교 엘리웨이 책 발전소에 구경을 갔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다. 제목을 적어 두었다가 수원시 도서관 상호대차 서비스를 이용해 무려 3번을 빌려 보았다. 제목이 잡문집인 만큼 워낙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가 두서없이 담겨 있어 한 호흡으로 많이 읽기 힘들었다.

중간에 건너 뛴 글도 있고 끝까지 다 읽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와 다른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 더군다나 매력있는 사람, 나름대로 멋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는 대체로 흥미롭다.

일본 사람 특유의 느낌이 있다. 어떤 사물, 사안에 대해서 그것이 사소할지라도 호불호가 명확하다는 느낌이 그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살면서 마주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나름의 생각이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어떤 것에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태도조차 자신의 입장이 명확하게 느껴진다.

나보다 한참 오래산 사람이긴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다양한 이야기를 쏟아낼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평범한 직장인인 나는 삶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초조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글을 쓰는 것도 생각을 하는 것도 가볍게 그냥 해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많이 쓰고 생각하고 그리고 계속해서 다듬어 나간다면, 나도 나름의 감상을 세상에 남길 수 있겠지. 이미 많은 것을 느끼고 경험하고 있지만, 단지 활자의 형태로 남기는데 필요한 부지런함이 부족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하진 않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는 좋아한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달리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으며 자연스럽게 그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여름 휴가차 들른 에어비앤비 숙소 그랜마 스테이 2F에 이 책이 있었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라는 것을 알고 가지고 온 책보다 먼저 읽게 되었다. 앙앙이라는 이름의 주간지에 일 년 동안 연재한 짧은 글들을 모아 놓은 책으로 부담없이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슈트 이야기, 불에 태우기, 긴피라 뮤직, 스키야키가 좋아, 고양이의 자살, … 제목만 보아도 서로 연관없는 단상을 자유롭게 나열했음을 알 수 있다.

소설가가 쓴 글을 읽을 때 그 것이 소설이든 에세이든 나는 삶의 빈곤을 깨닫곤 한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이런 느낌을 가질 수 있을까 감탄한다. 상대적으로 나는 아무 생각도 느낌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생각하고 느낀만큼 살아간다고 한다면 나는 정말 가난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 기록된 짧은 글과 같이 이 블로그에 종종 단상을 적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자꾸 글을 쓰다보면 세상을 인식하는 센서도 정교해지고 생각의 폭도 넓어지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어떤 책에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상실의 시대의 작가로 알려진 무라카미 하루키가 마라톤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이 책은 오랫동안 읽기목록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달리기라는 주제는 나에게 특별하다. 20대 초반 100kg이 넘는 체중으로 건강까지 악화되었을때,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300m부터 달리기를 시작했고, 달리는 거리는 점점 늘어나 한때는 하프마라톤까지 준비하기에 이르렀다. 바쁜 업무로 하프마라톤 출전은 좌절되었으나 10km 단축 마라톤 코스는 여러 번 뛰었다. 달리기를 처음 시작할 때 읽었던 책이, 독일 외무부 장관을 지냈던 요쉬카 피셔의 나는 달린다였는데, 이제는 달리기를 생각하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단순히 달리기 경험을 이야기하는 책은 아니다. 달리기를 축으로 인생을 회고한 책이라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30대 초반 전업 작가의 길로 접어든 무라카미 하루키는 긴 인생을 소설가로 살아가기 위해, 작가에게 필요한 집중력과 지속력을 얻기 위해 장거리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매년 풀코스를 완주하여 이 책이 출간될 당시까지 26회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다.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살아가기 위해 끝없이 정진하는 모습은 존경심을 자아냈다. 달리는 행위가 무익하다고 해도 적어도 노력했다는 사실은 남는다는 생각과 자신의 묘비명의 문구를 선택할 수 있다면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로 쓰고 싶다는 소망은 인생을 살아가는 그의 자세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언젠가부터 노력하지 않고 좋은 결과를 바라고 있는 자신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꾸준히 자기계발을 해야겠다는 생각만 있을뿐 조금만 피곤하면 내일로 미루는 일이 다반사다. 노력해도 결과가 금방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조급함에 노력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

추운 겨울이지만 다시 달리기를 시작하려 한다. 달리기는 즐거울 때도 있지만 보통은 고통을 수반한다. 고통을 이겨내고 목표한 만큼을 뛰어내는 것으로부터 삶의 자세를 다시 가다듬으려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세계적인 마라토너인 세코 도시히코에게 달리고 싶지 않은 날, 쉬고 싶은 날이 있었냐고 물었고, 세코 도시히코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늘 그렇습니다!” 편안한 상태에서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너무 오랫동안 잊고 지냈다.

세상에는 때때로 매일 달리고 있는 사람을 보고, “그렇게까지 해서 오래 살고 싶을까” 하고 비웃듯이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이지만 오래 살고 싶어서 달리고 있는 사람은 실제로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설령 오래 살지 않아도 적어도 살아 있는 동안은 온전한 인생을 보내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달리고 있느 사람이 수적으로 훨씬 많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든다. 같은 10년이라고 해도, 멍하게 사는 10년보다는 확실한 목적을 지니고 생동감 있게 사는 10년 쪽이, 당연한 일이지만 훨씬 바람직하고, 달리는 것은 확실히 그러한 목적을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의 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의견에는 아마도 많은 러너가 찬성해줄 것으로 믿는다.

생동감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나는 달릴 것이다.

해변의 카프카

해변의 카프카 (상)8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문학사상사
해변의 카프카 (하)8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문학사상사

상실의 시대에 이어 읽게 되었습니다. 서점을 오가다 늘 마주치게 될 정도로 유명한 작품입니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일상속에 정말 찔끔찔끔 읽었고, 다 읽은지 거의 보름이 지난 지금에서야 리뷰를 쓰려니 작품에 대한 느낌이나 감동이 가물가물하네요.

소설이 전하고자하는 메시지는 정확히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재밌게 읽었습니다. 이 소설에서 만난 등장인물들은 다른 여느 영화, 소설, 드라마에서 접해보지 못했던 나름의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나카타라는 인물에 호감이 많이 가더군요. 초반에 스토리가 잘 흘러가다가 고양이상과 대화하는 장면부터 저는 좀 깼습니다만… 비현실적인 내용을 담고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있었거든요.

훌륭하다는 작품을 읽고도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어떤 감동을 느꼈는지,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다보니 아직도 소설을 제대로 읽으려면 멀었나봅니다. 비현실적인 스토리에 당황이나 하구 말이죠. 그래도 언젠가 소설로부터 커다란 즐거움을 얻을 수 있도록 계속해서 꾸준히 읽어나갈 것입니다. 다음에는 이 소설에서 주인공이 명작으로 추천해 주었던 위대한 개츠비를 읽어볼까 합니다.

상실의 시대

상실의 시대8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문학사상사

정말 오래전부터 서점에서 보았던 책인데, 이제서야 읽게되었습니다. 제목만 보고 어려운 책인줄 알았는데, 의외로 술술 읽히는 연애소설이더군요. 이 책 덕분에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고, 이 책을 읽은 후 “해변의 카프카”를 읽고 있습니다. 역시나 바쁜 일정 때문에 진도가 더디게 나가고 있긴 하지만…
10대에서 20대로 성장해 가는 한 남자의 젊은 날의 방황을, 아픔을 간직한체 하루 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한 여자에 대한 사랑을 잘 그리고 있습니다. 바쁜 와중에 아주 조금씩 틈틈히 읽은데다가, 제가 소설에는 젬병이여서 이 소설이 주는 감동을 온전히 느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책을 다 읽은 후 얼마지나지 않은 시간에, 무심코 머리속으로 소설을 되네이며, 주인공 와타나베가 되어보았을때 가슴을 때리는 커다란 상실감에 슬픔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여유를 찾은 지금은 “해변의 카프카”를 통해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세계를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