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어제 밤 조촐한 팀회식이 있었다. 떡삼시대에서 삼겹살에 소주 각 1병을 소화하고, 바에서 맥주 두어병 들이킨 후, 찾은 당구장에서 용호형의 전화를 받았다.

“건우야, 사택에 도둑이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도 태연했던 것은 사실 우리 사택 꼬라지(?)를 보면 훔쳐갈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도둑이 베란다 창문을 열고 들어와서 처음 마주친 풍경은 아마도 …

유리가 깨져 없는 골격만 남은 테이블에, 풀스2 위에 놓인 무수한 양말과 속옷들 …

그나마 뭔가 건져보려고 회사에서 지급해준 서랍장을 열심히 뒤진 흔적이 남아 있었으나 별다른 소득은 없었을 것이다. 도둑이 느꼈을 황당함을 상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당구장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물건중에 가져갈만한 것에 대해서 공곰히 생각해 보았다. 피아노를 가져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훔쳐갈 것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뿔싸! 시계를 사택에 두고 출근했다. 작년 중국 학회에 갈때 면세점에서 샀던 스와치 시계와 운동할때 착용하는 TIMEX 시계를 책상 위에 두었던 것이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발걸음이 빨라졌고 둘다 가져갔을꺼라는 최악의 가정을 하고 집으로 들어섰다.

평소 1, 2명의 인구밀도를 보이는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사택은 도둑소동(?)으로 인하여 동기들로 가득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보아하니 별다른 피해는 없는 듯. 내 방에 들어가보니 다행히 스와치(?) 시계만 훔쳐갔다. 그리고

그 시계가 우리가 입은 피해의 전부였다.

피아노 위에 두었던 내 컴팩트 디카와, 룸메이트 양전임의 cdp, 그리고 병수의 dslr 카메라는 그대로인데, 유독 기스난 10만원짜리 스와치 시계만을 가져간 것이다. 나의 유일한 패션(?) 소품을 가져가다니 …

도둑이 든 덕뿐에 오랜만에 다같이 모여 화기애애한 분위기, 내게 여자친구가 생겼으니 닭맥을 쏘라는 병수에 의견에 모두들 동조하는 바람에 시계를 잃어버린 안타까움도 다 잊어버리고 기분좋게 닭맥을 시켜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잠을 청하기 위해 각자의 방을 찾아갔다.

비록 나는 시계를 잃어버렸지만, 오랜만에 사택 식구들이 두루 모여 즐거운 자리를 보내 기분이 좋았다(?). 잃어버린 시계는 문단속을 잘하자는 교훈의 대가라고 생각해야겠지.

그 날이 오면

항상 바라는 내일이 오면 환희는 얼마 안가서 사그러들지만 그래도 기다려지는 내일이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내가 바라는 그 날은 지금으로부터 약 3년 후. 여러가지 변수가 있을 수 있겠지만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간다면 3년 뒤에 집과 회사는 모두 판교에 있을 것이다.

작년에는 우리 가족 구성원 4명은 모두 전국에 뿔뿔히 흩어져 있었다. 아버지는 경남 창원, 동생은 강원도 원주, 어머니는 서울 그리고 나는 대전에 있었는데 온가족이 모두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올해 들어 어머니가 창원으로 이사가시면서 부모님은 함께 계시지만 동생은 여전히 원주에 있으며 나는 분당에서 사택에 거주하며 회사에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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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연구소는 현재 분당 서현역에 있지만 3년 후 판교 연구단지에 입주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현재도 너무나 좋은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긴 하지만 판교 연구소에 입주하게 되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모든 연구원들의 방은 빛이 잘들고 환기가 잘되는 창가쪽에 배치한다고 한다. 게다가 연구소 내에 휘트니스 센터와 사우나 시설까지 갖출 예정이라고 하니 연구원들의 기대가 크다.

이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우리 가족은 판교에 입주할 예정이다. 사택에서도 너무 좋은 친구, 형들과 즐겁게 지내고 있긴 하지만 편안함과 안락함이 우리집만할까? 종종 어머니가 보내주시는 사진을 바라보면 우리집과 가족이 어찌나 그립던지!

새로운 집에 이사가게 되면 책장을 잔뜩사서 그 동안 모아둔 책을 가지런히 꽂아 두고 차 한잔 마시며 조용히 책을 읽고 싶다. 아직 금전적인 문제로 시작을 못했지만 그때까지 끈기 있게 피아노를 배운다면 집에서 피아노 연주도 하고 싶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3년 후 나의 능력일 것이다. 어떤 실력과 인격을 가지고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까? 3년 후의 좋은 환경을 꿈꾸는 것도 좋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을 3년 동안 바지런히 가꾸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사택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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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2월 입사 이후에 거주하게 될 사택을 배정 받았다. 분당 서현역을 중심으로 왼쪽 위에 빨간 네모가 회사 연구소, 오른쪽 아래 파란 네모가 사택이다. 지하철 몇 정거장 떨어진 곳에서 회사를 다니게 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정말 가까운 곳이라서 마음에 든다.

왼쪽 아래 초록색으로 보이는 부분이 분당 중앙공원! 달리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최적의 장소가 될 것 같다. 걸어서 출퇴근하고, 회사에서 밥먹고, 놀 시간 없이(?) 열심히 일하면 그야말로 돈이 굴러 들어오겠구나!